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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벼의 재배는 약 1만년 전에서 6천년 전 농업이 시작되며 이루어졌다. 특히 벼의 생육에 적합한 더운 기후와 높은 강수량을 가진 아시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벼 농사가 발달하였으며, 자포니카(Japonica) 종은 중국 양쯔강 유역의 상산 유적과 허무두 유적 주변에서 기원전 8천년 경 재배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5천5백년 경에는 인디카(Indica) 종이 분화하여 인도로 이후 기원전 4천년경에는 동남아시아 일대로 전파되었다.




기원전 1천년을 전후하여 캅카스에도 상륙하였다. 서아프리카에는 기원전 1500~800년 사이에 전파되어 니제르 강 삼각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에 의해 중세 초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에 중동 개량종 쌀이 보급되었으며 이후 서기 15세기부터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경우 빙하기 이후 근세까지 냉대동계건조기후가 나타났던 탓에 쌀의 재배에 매우 불리하였으며, 청동기 시대에 벼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잡곡의 생산량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편 2003년,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1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쌀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11] 이에 대해서 현재로서 의견은 분분한 상태. '빙하기였을 당시 기후에서 벼가 발아할 수 있는가?'라던가 '재배벼인가, 야생벼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전자는 냉해실험을 통해 발아할 수 있었다고 밝혀졌으며 후자는 그 중간 단계인 '순화벼'에 해당된다고 밝혀졌다. 다만 유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벼와 유사성은 조금 낮다고. 콜린 렌프류의 《현대고고학의 이해》에서는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하였다. 쌀에 대한 언급이 있는 문헌들, 예를 들면 《산해경》 같은 서적을 보면 동양에서 쌀은 오래전부터 단순한 식량의 위상을 넘어 제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곡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을 때 쓰는 떡이나 술, 식혜 등등은 모두 쌀을 사용해 만드는 제물이다. 지금의 인식과는 달리 고대 이래 술을 빚은 가장 큰 목적은 사람이 음용하기보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고[12], 동양권에서 제사에 쓰는 술은 대부분 쌀로 빚었다.[13] 쌀의 재배는 이러한 제사문화와 그 역사를 함께 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며, 서양에서의 포도 재배와 신앙 문화와 비교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이 '쌀을 구매'할 때, 반대로 '쌀을 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쌀 한 되 사와라" 라는 말을 "쌀 한 되 팔아와라" 라고 말하는 식. 80년대까지 일상적으로 쓰이던 말로, 수험생들이 익숙할 1925년 발간된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에서 주인공 화수분의 아내가 '어멈'[31]이 집에 쌀이 없어서 쌀가게에 갔다가 주인과 친해져서 친딸을 입양시킬 집을 알아봐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로 직전까지 집에 쌀이 없어 굶는 집안에서 쌀가게에 쌀을 판다는 모순적인 장면 때문에 어리둥절 하는 대목이지만 실은 쌀을 자주 샀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용법이 쓰이는 이유에 대한 가설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과거에는 쌀이 주요 화폐였고 돈은 쌀과 병행에서 쓰이는 보조적인 화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쌀을 팔아 돈을 산다'라는 인식이 정립되어 있었다는 설이 있다. 현대의 우리가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돈으로 금을 산다'와 비슷한 말이라는 것이다. 즉 쌀이 돈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쌀을 판다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 첫째 가설이다.





그 외에는 쌀을 팔 수 있을만큼 재산을 축적한 양반이 사농공상의 제일 아래인 쌀을 팔러 다니는 행위가 터부시 되었기 때문에 '쌀을 산다'라는 말을 에둘러서 반대로 표현했다는 가설도 있다. 또는 중요한 쌀을 사러간다고 하면 집안에 쌀이 떨어졌다는 것이므로 조상님이 노하시기 때문에 반대로 쌀을 판다라고 하여 집안이 풍족하게 들리게 한다는 긍정적인 해설도 있다.



참고로 시장에서 쌀과 곡식류를 전문으로 하는 점포는 따로 싸전이라고 부른다. '쌀'과 가게를 뜻하는 '전'의 합성어에서 ㄹ이 탈락한 것. 대규모 유통이 발달하고 농협 등에서 직접 쌀을 판매하면서 전통적인 "싸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의 쌀 생산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베이비붐으로 인구는 매년 3%씩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쌀 생산량은 답보를 거듭하면서 쌀 부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당시 한국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사정이 나빴다. 박정희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통일미를 개발해 보급했고 1976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쌀 자급에 성공했다. 수확량은 3,621만석이었다. 자급 달성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해 11월 쌀 소비 억제 정책의 키워드와 다름없었던 무미일을 폐지했다.



이후로도 풍년은 계속돼 1977년엔 쌀 생산량이 4천만석을 돌파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다수확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쌀 대풍을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은 이 해 12월 4천만석 돌파 기념탑을 세웠으며, 농촌진흥청을 방문해서는 쌀 자급 달성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녹색혁명 성취'라는 휘호를 남겼다. 정부는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하고, 쌀의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초과하여 해외에 수출도 하게 되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쌀이 남아돌자 박 대통령은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만인 1977년 12월 쌀 막걸리 제조를 허가했다. 쌀 막걸리의 등장은 그 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인들은 쌀의 자급자족 성공으로 보릿고개나 혼식/분식 장려 운동, 무미일, 절미운동 같은 단어들을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해 놓고, 가장 먼저 그동안 한이 맺혀 있던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데 소비하기 시작했다.


통일벼는 냉해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는데, 1980년 최악의 냉해로 통일벼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80년은 쌀 생산량이 30% 감소한 최악의 흉년이었다. 1981년 통일벼 강제 정책이 폐기되었고 식량난이 대강 해결된 1980년대가 되자 맛이 없어서 통일미는 당연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쌀 농사는 1977년 풍년 이후 1980년에는 냉해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해마다 풍년이 들자 쌀이 남아돌아 쌀 증산이 아닌 감산 요구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쌀 생산량은 1988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2017년에는 쌀 생산량이 최악의 흉년이었던 1980년보다 적어져 통일벼 개발 이전인 1960년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벼 재배 면적도 1987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인데, 2018년 73만 8천 헥타르로 2017년 75만 5천 헥타르보다 2.2% 줄어들었다. 벼 재배 면적 감소율은 지난해(-3.1%)와 최근 5년 평균(-2.3%)보다 낮은 수준으로, 지난해 쌀 가격 상승세와 함께 기상 악화로 인해 다른 작물로의 전환이 여의치 못해 벼 재배로 돌아온 농가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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